그곳의 날씨는 어떤지 너무나 멀어 가늠이 되지를 않습니다 잘 계시는지요? 서울은 4월이 지나고 이제 곧 5월이 열리겠지요 버드나무 솜털이 눈송이 처럼 날리던 그 5월이 말입니다. 참 40년전 이야기라는 것을 먼저 써야 했는데..
남녘을 찾아 간 그곳에 당연히 그대의 숨결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당황했던 계절도 5월이였군요 먹물 뿌린듯 깜깜했던 그대의 핸드폰에서는 쉼 없이 부재를 알렸습니다 너무 믿기지 않은 부재의 소식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었지요 이런 날이 있을까 ..이런 날이 있을까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그렇게 두어해를 지나고 흔들리는 목소리와 연결되어진 곳은 이름도 생소한 머나먼 곳. 너무 멀어서 실감이 되어지지를 않더군요
버드나무의 솜털이 눈송이 처럼 날리던 교정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그대는 울림 좋은 경상도 사투리와 어리광이 입가에 배여 있는 하얀 모습은 하루 하루가 쌓이는 만큼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일 회담 반대 데모로 학교는 들끓기 시작하고 갑자기 1학기말 시험이 접어지고 방학으로 이어진 당혹속의 시간 우연히 학교앞 햇볕 쨍쨍한 거리에 마주친 그대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간다면서 내게 흘리듯 "보고 싶어 어떡허지? " "편지 할께" 그것이 인사 치레의 말이라는 생각도 없이 40여일간의 방학내내 소리 없이 떨어질 펀지 한장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가슴 앓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타인을 좋아 한다는 순백의 감정은 시계바늘이 돌아가듯 그렇게 눈에 띄이지 않게 눈을 감아도 조용히 어둠이 내려 덮히고 바닷물이 가만 가만 백사장을 건드리듯 그렇게 마음에 켜켜히 담아 졌습니다 이런 내 감정은 그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는 무관했습니다 왜 뙈약볕 거리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면으로 부디치게 한 신의 섭리는 무엇이였을까? 그 아무런 의미없는 신의 섭리에 한동안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영장을 들고 오신 어머님을 따라 밤기차를 타고 멀어지는 그대의 모습이 마지막인가 했습니다 남녘에 자리 잡은 그대의 소식을 듣는 날은 내 마음은 늘 바람이 였습니다. 호올로 있는 시간 그 어느 무엇에도 걸쳐지지 않는 시간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였을까? 먼곳의 그리움은 운명이기도 하고 숙명이라고 자위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베틀에 올라 앉아 베를 짜고 있는 한이 긍정적으로 맺여 있는 저 밑바닥에 또아리 틀고 있는 한 매듭 항상 손짓해 부르는 그리움앞에서 난 홀로 씨줄과 날줄을 엮곤했습니다 출장길에 잠시 서울역 파발마 앞에서의 짧은 해후. 충실한 나날에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날은 괜스리 등이라도 토닥 토닥 두드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사를 시답지 않게 생각하던 그대가 좋아서 따라 다니던 시절은 점점 아득해져가곤했습니다 맑은 목소리 듣는 날은 그래서, 잿빛 하늘을 닮은 목소리를 듣는 날은 그래서 마음이 서럽고 아프던날. 이제는 그런 시간조차도 그립습니다 기러기 아빠로 홀로 있는 시간을 무척 힘들어 했고 작게 들리는 집안의 소리는 그저 미루어 짐작을 할뿐 그런 시간이 지나고 그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 졌습니다 작아진 목소리는 어느날 흔적도 없이 내 시야에서 내 귓가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어해가 지난후 먼 곳에서의 소식은 섭섭함 보다는 그래도 반가움이였습니다 4시간이 소요되던 먼곳의 그리움 앞에 목 말라 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던 시간이 그나마 행복이였었나 봅니다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면서 한번더 찬란했던 그대의 황금기에 버금가는 나날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이제 4막 3장을 지난 내 인생의 길목에서 더 늦기전에 그대와 거닐었던 길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군요 이제는 그대와 나누었던 추억의 끝자락을 그대와 나누는것이 아니라 아마 내가 떨구어 버릴까 두려워 찾아 주어 드는 빛바랜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환절기 입니다 환절기면 감기 걱정을 해 봅니다 내 걱정이 먼 그곳까지 닿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시절 그 만남이 뜻이 있다면 그러한 헤어짐도 뜻이 있겠지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기 위해 몸부림 친것이 어찌 김춘수의 꽃만이겠습니까? 내내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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