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백

자장면의 추억

저녁 바람 2020. 5. 30. 06:22

그는 서울역 근처 커다란 빌딩에서 근무하고

난 남영동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철을 타면 서울역 다음 역이 남영역이다

" 야 우리 전철 타고 인천이나 갔다 오자

남영역 앞으로 나와라 "

그리고 전화 속의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툭 끊는다

뭔지 일이 잘 안 풀리나?

바다가 보고 싶었나?

아무리 오빠 회사에서 큰일을 맡고 있지는 않더라도

바다가 보고 싶고 뭔지 일이 안 풀린다고 근무 중에 그를 따라서 인천을 갔다 올 그런 철부지는 아닌바...

남영역에 역시 심드렁한 얼굴로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

인천은 불가능하지만

우리 숙대 입구에 가서 점심이나 먹자고 팔을 끌었다.

인천까지 끊어 놓은 전철 표는 할 일이 없어지고

우리는 숙대 입구로 올라갔다

갈월동으로 해서

숙대 입구를 거쳐 청파 국민학교를 졸업했기에

그 길은 익숙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가보는 맛도 괜찮을듯하여서 발길을 그리로 돌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을 먹을 집을 물색하는데

영 마땅한 곳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

그때의 시절은 맛보다는 분위기를 따지던 때

어느 이쁜 카페 같은 하얀색으로 치장한 집이 눈에 띈다

들어가려고 보니 중국집이다

좀 망설이다 집이 너무 예뻐서 들어갔다

남자치고는 그도 이렇게 예쁘고 응징스럽고 그런 모양새를 따지는 성격이다 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장면을 주문했다.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실없는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그도 불편했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은 듯

자장면을 먹고도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은 그 중국집에서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장면을 오랜만에 접하다 보니

예전과 달리 완두 콩도 들어가 있고

무언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철을 타고 와서

지나가는 행인 1처럼 서 있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었고

그렇게 작정하고 퇴근길에 만난 것도 아닌

스치고 지나가다 만난 듯

그날의 만남은 신선했다

자장면에는 못 보던 푸른 완두 콩이 들어가 있어 검은 자장 속에 더 빛났던 푸른색

일상이 지지 부진했던 날

그렇게 푸르름이기를 바랐던 시간 속에 난 잠시 그와 앉아

연둣빛의 시간을 즐겼다

그도 그래 우리 인천 가지 않기 잘했다

이제 일하러 간다 하면서

흔괘히 순한 얼굴로 돌아섰고

난 숙대 입구에서의 자장면의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그 후 그 집은 찾을 길이 없었다

아마 다른 건물로 증축이 되었거나 다른 장소로 변한듯싶다.

그날의 기억은 그에게도 만족스러웠던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쩌다 자장면 이야기가 나오면 그도 그 집의 자장면 추억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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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필 때면

우리 어린 시절에는

창경궁(그때는 창경원이라고 했다) 을 갔다 오지 않으면 거의 무식의 소치쯤으로 여기던 시절

우리 엄마와 작은엄마는

작은 집 사촌들과 우리들을 데리고 창경궁을 가신다

종로 5가에서부터 인파는 미어터지고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이 밟히기라도 할까

또는 잃어버리기도 할까 싶어 구경보다 아이들 챙기기가 더 힘든 시간

벚꽃도 구경하고 동물들도 구경하고

나오다 엄마는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나는 사실 자장면보다는 울면을 더 좋아했는데

그래서 전에는 자장면보다는 울면을 더 잘 먹었다

그날은 그냥 한꺼번에 자장면을 시켰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사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이렇게 자장면까지 사 멕인다는 흐뭇함의 감동을 누리고 계셨다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은 귀찮은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 자식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저 마음과 정성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우리 부모님들

아이들을 치마폭에 싸안고 잃어버릴세라 안간힘을 쓰고

구경을 시켜주고 점심 멕이고.

구정 즈음이면 영하 10도 내려가는 것은 잠깐

그런 아침에도 전날 씻어 놓은 쌀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으로 가서 가래떡을 만들어 설날 아침 조상 차례 지내고

자식들 입에 따뜻한 떡국을 먹이시려는 그 시대의 부모님 마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지금과 같다고 해도

내 마음속에는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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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중화복춘 자장면 3월(202020년)에 갔을때 15,000원

이곳은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하기 힘들다.

여러가지 적당한 가격의 재료가 들어가서 그런지 내가 먹어본 자장면중 최고의 미각을 선사했다

신도림 현대백화점 지하 신승반점 자장면 10,000(삼선간자장면)-2018년 10월

맛을 상 중 하로 구분하자면 중에서 상위권

내가 만든 자장면

춘장을 홈플에서 구입해서 만들었음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생랴했더니 맛이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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