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백

나의 짝사랑

저녁 바람 2020. 6. 8. 08:31

초등학교

내 짝 영수는 얼굴이 하얬다.

맨날 맨날 아파서 일주일의 반은 결석이었다.

난 그래도 그런 영수가 좋았다

그냥 좋았다.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이 옷에 색칠하기

영수는 노란 저고리에 빨강 치마로 칠했다.

영수야 그런 색은 너무 흔하지 않니... 다른 색으로 칠해봐

물론 뱉은 말이 아니고 속으로만..

그리고 난 물론 진부하지 않은 색으로 칠을 했다.

노란 저고리에 빨강 치마는 너무 모든 사람이 아는 색이니까...

선생님은 영수의 시험지를 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아이는 중도에 휴학을 했는지 그랬었다.

영수야 난 그때 네 하얀 이마에 푸른 심줄이 돋아 있는 것도 좋아했단다.

유*상

이 아이는 학교 모든 석차에서 단연 1,2위를 다투는 아이

얼굴 잘 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감색의 양복 옷에 금속 단추를 목 밑에까지 잠그고

하얀 카라를 덧댄 옷은 단연 모범생의 교복 같았다.

난 네가 송아지라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나오면 송 씨 성 가진 아이를 놀리는 것도 싫어했단다.

그 여자아이는 밥 먹다가 송아지 노래만 나오면 쏜살같이 어딘가로 도망갔었지

반 아이들이 놀리니까..

그렇게 너희들이 놀리는 것도 난 부러웠단다.

서울에서 제일 우수한 K 중학교에 합격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수도 유*상도 물론 그 학교 교문을 뒤로

할 때 이미 그 학교와 함께 이별했다.

아이보리색 바바리를 입으면 큰 키가 더 훤칠했던 오빠 친구.

농담도 잘하고

우리 대학 축제 때 파트너 급조에 응해준 오빠 친구

내심 추첨에 내 파트너가 되었으면 은근히 맘에 두었는데...

전화해서 요즘 재미있어요.? 하고 묻는 오빠한테

물론 재미없지요. 하고 대답하니 너털 웃음을 웃고

대학 시험 볼 때 체력장에서 있었던 일을 한 시간이나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오빠의 털털한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가 없다

내게 재미있어요 하고 물어 줄 수도 없고

내가 재미없다고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해 줄 수 없는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암이라는 몹쓸 병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병원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쩍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부음 소식을 들었다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는 친구의 오빠

늘 그 오빠는 무엇 때문인지 그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고만 있었다.

그것이 무슨 카리스마라고

난 그 모습이 좋아서

지금도 그 친구한테

잘생기고 내가 좋아했던 오빠 잘 계시냐고 물으면

지금 수술도 하고 그래서 건강이 아주 좋지 않다고

그 오빠를 언제 보고 못 봤는지

집안 좋은 규수와의 결혼이 그 오빠가 싫다고 해서 깨졌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지...

물론 그 후에 다른 분과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사시지만

머리 자른 모습이 귀엽다고 한 후배

뒤돌아서면서

왜 귀엽다고 했을까?

슬쩍 던진 말이 좋아서 잠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맘에 담아 두었다

늦게 온 벌칙으로 마시던 내 커피를 가져다 마시는 엄청난(?) 일을 벌인 그

결혼하자고 하더니

맨발의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하고 밥 먹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어쩌나 그러고 있는데

그는 내 마음이 자기를 향해 어떤 변화를 주지 않는다고 그냥 돌아섰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R.O.T.C

아이보리색 바지를 잘 입고 다녀서 금방 눈에 띄었던 그

아마 나보다 한 학년 위인 것 같았는데

내가 2학년 때 R.O.T.C. 복장을 하고 다녔으니까

어느 단과대학의 무슨科의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이 사람은 너무 애뛴 얼굴이어서

그 당시 여학생들은 다 알고 있는 이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예쁘장하게 생겼었다

아마 그를 남몰래 짝사랑했나 보다

내 삶에 한 획을 그어놓고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겨 놓은

내 맘을 무지 흔들어놓았던...

이제 그 사람의 이야기도 많이 잊혀 간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잊혔듯이 나도 잊혀 간다

한때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오듯

모든 것이 그와 연관이 되었었다.

노래가 그랬고

영화가 그랬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이 그와 같이 존재했었다.

아버님이 휴양차 해인사 원당암에 계실 때

동생과 교대하여

다시 해인사로 들어가던 날

대구에서 직행버스를 갈아타고

건너 건너에 등산복을 입고 왜 혼자 등산을 가는지

그 통통한 남자는

휴식시간에 저 혼자 내려 돌을 하나 집어 어딘가 던지면서

나를 넌지시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 멋쩍어 하던 모습이 너무 맘에 들어 잠시 그를 맘에 두었다.

설악산과 동해 바다 4박 5일간의 산악 버스 안

앞자리에 앉은 Mr. 지리산에 등산하다 자기를 만난 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아니요. 대답하고

난 속으로 그랬다

나는 그렇게 어디선가 많이 본 그런 얼굴을 가진 다정다감한 사람이에요.라고

그 말 한마디만 던지고

별말이 없던 그 남자

중간 어디선가에 승차하여 동행이 되었던 모 은행 아가씨가 대시했는데도 너무 묵묵한 그가 몃져 보이고 말을 하지 않아서

난 4박 5일 동안 앞자리에 앉은 그 남자를 짝사랑했다.

심심했던 J 소위

자기를 너무 깨끗한 놈으로 보지 마세요.라는 말로 아연실색하게 만들더니

어디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 옛날 가수 박형준을 아주 많이 닮았는데

누구 이런 사람 본 적이 없나요?

많이 궁금하다.

난 4학년이고 그 J 소위는 2학년이었다

누님들 계룡산 등반에 보디가 디로 동반했던 중위로 제대했음에도

난 언제까지나 J 소위이다

이런 사람이면 결혼해도 괜찮은데

초등학교를 한해 일찍 들어가서 한 살만 차이 나는데

한 살 정도야 너끈히

극복할 수 있는데

그런 맘먹었는데

내가 그의 이상형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그를 한때 참 좋아했다

국전에 같이 가면서 땅콩도 까먹고

맥주 조끼 잡는 법도 가르쳐 주었는데...

어쩜 그도 나도 너무 많이 변해서 스쳐 지나갔는데도 몰라본 것은 아닌지...

그의 브라운의 커단 체크 무늬의 그 옷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

그를 한 번쯤 보고 싶다는 뜻인지...

 

담배를 잘 피우던 그.

우리 아버님 비슷한 체격이 우선 포근했다.

그리고 나의 한 곳에만 머무는 성격에 대해 많이 나무랐다.

웃는 모습이 너무 편안했고

그의 두 눈은 아이 눈처럼 순하디 순했다.

많이 힘들어할 때

그에게 많은 힘을 실어 주지 못해 미안했다.

지금도 그가 입에 물던 담배가 나였으면

그의 수많은 생각 속에 내가 일부분이었으면 바래던 때가 있었다.

그대의 두 눈을 아직도 기억해요.

그의 두 눈을 기억한다는 것은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더 있지만 이 정도로 끝냈다.

박애주의자도 아닌데

이렇게 모든 사람을 보듬고 껴안고 세월 보냈다.

사랑 하나면

태평양 바다를 맨발로라도 건널 수 있다 생각했지만

부딪쳐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

그 그렇지 않더라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 눈에도 눈물 흘리게 했고

당연히 나 역시 눈물 흘렸다

그래서 난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지만

다음 세상은 윤회 사상에 의해 남자로 태어나게 되는가?

아무튼 다음 세상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

그저 묵묵한 바위로 태어나면 좋겠다 했다

그런데

아마

난 바위로 태어나도

날아다니는 물새를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조개라도 짝사랑하지 않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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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야후시절 잘썼다고 훈장 달아 주신분의 글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요

날개도 없는데 마음은 솜털같이, 부드러운 솜털처럼 마냥 날아다닙니다

가급적 칭찬을 많이 해 주세요

전 칭찬을 많이 받지 못했어요

엄마의 깨물어 안 아픈 손 다섯째랍니다.

그래서 인색하게 자랐어요.

진심으로 꽃 피는 봄이 되기를 빌어 주심이 느껴져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항상 신께 빌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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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사용자

2006년 2월 16일 오후 3:02

 

...아마

난 바위로 태어나도

날아다니는 물새를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조개라도 짝사랑하지 않으려는지...

...헉! 이쯤 되면 시가 자연적으로 되고 말았군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

진솔한 말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쩌면 아득히 먼 곳에 가버린 지난날의 순진 무궁한 소년기의 희미한 그림자를 불러일으키게 하네요....

오늘도 제비 듣고 갑니다... 올봄은 쥔장도 꽃 피는 봄이 되시기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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