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씨 책을 읽고 다시 펼쳐든 책
변호사 윤학씨가 쓴 <흰 눈을 털며 달려가던>...
제목 밑에 이런글이 두줄 씌여 있다
나를 찾아 가는 지혜여행
길을 찾는 이에게 지혜로워지려는 이에게
글 쓴이 윤학
책을 열면 표지에 그이에 대한소개가 이렇게 씌여 있다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집 툇마루에서 아버지가 도회지에 나가
어렵게 구해온 책을 표지가 너덜 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학은 변호사가 되고 법학박사도 되었지만
어릴 적 아버지 옆에서 책을 읽던 소년의 마음이, 맑은 정신이 늘 그립다
사람들 역시 가치 있는 것에 목말라 하고 순수한 세계를 열망하면서도 남의 눈에 얽매여서,
자기 생각에 빠져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글쓸기로 확장되었다
<카톨릭다이제스트>와 <월간독자 Reader>를 발행하고 있는
윤 학은 사람들 가슴에 다가갈 글 한편을 위해 오늘도 수없이 생각하고 여닫아 하면서 글을 쓴다
이제 그의 글은 세상에 주는 그만의 톡특한 사랑의 선물이 되었다
이 책을 <잃어버린 신발 열 켤레>에 이어 그가 세상에 내놓는 두번째 선물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변호사
<카톨릭다이제스트>와 <월간독자 Reader>발행인
화이트홀 갤러리화이트 대표
이 분은 직업이 그렇듯 책을 쓰는 업인 작가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 오면서 이것이다 싶은 삶의 지침서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인듯
무척 무엇이 많이도 부족했던 어린시절 헤쳐 나오고 나름 극복을 하여서
이렇다 하게 성공하신분
그래서 아마 블로그 쥔장의 눈에는 그이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들린다
어느 한쪽의 환경에만 접하지 않고 어려운 시절 겪고 이른바 세상이 알아 주는 출세를
하여서 양면을 다 들여다 본 사람으로서의 할말이니 새겨 들을 것이 많았다
작가는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니 직업의식에 의해서
글들이 가미가 되어 짭짤한 맛도 나고 달콤한 맛도 있고, 각종 조미료가 다 들어 가 있을 수 있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이 분의 글은 시원한 여름날 오이를 채 썰어 고명으로 얹어 준 콩국수 같다고나 할까?
나름의 생활 철학도 있고
베틀에 앉아 모시를 평직으로 어떤 꾸밈 없이 결대로 짜내듯 단순한 모양새로 곱게 한올 한올이 정성 스럽다
우선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만큼 읽힘이 순했다는 이야기다
성공은 내가 하던 남이 하던 즐겁고 기쁜 일이다
실패를 이야기 한것이 아니고 성공담을 읽으니 좋고
성공을 하면서 일구어낸 그이 자신의 삶의 언저리가 반듯해서 더 좋았다
다음 글은 그의 저서<흰눈을 털며 달려가던> 에서 발췌한 글들
....세상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나무도 베어져야 하고 생계를위해 환경을 파괴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므로 환경보호를 외치면서 누군가 비난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누군가 열 그루의 나무를 베면 누군가 열 한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되는 것이다
월부책 영업을 통해서 내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남에 의지해 산다는 것,
남의 따뜻한 마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 나는 내가 공부를 잘해야 ,내가 인정받아야, 내가 열심히 해야 사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호의가 ,남의 의지가 나를 살게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들에 피어나는 들풀, 하늘을 나는 새도 돌보시는 하느님이 하느님의 자녀인 사람을 돌보지 않겠느냐?
말로 배워서 되로 써먹는 사람이 되지 말고 되로 배워서 말로 써먹는 사람이 되야 한다
고양이를 호랑이로 보면 고양이 앞도 마음대로 걸어가지 못하고 산다
돈이 있어야, 자리가 높아야, 배경이 있어야 일을 할수 있다는 시시한 속설에 속으면 뜻이 있어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세상에는 경쟁적 가치와 비경쟁적 가치가 있다
돈과 권력 같은 경쟁적 가치는 세상에 한정되어 있어서 남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엔 남과 경쟁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비경쟁적 가치가 있다
그런 가치는 이 세상에 무한정하게 널려 있다
사랑과 나눔 같은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를 항하고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며 살아가면? 남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필요도 없고 늘 내가 남에게 주기만 해도 되는 인생이었다
진정한 정의는 무엇일까?
정의는 불의를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형평이며 평등이며 사랑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남의 잘못만 고치라고 떠든다면 그것은 평등하지도 평평에 맞지도,
사랑이 담겨있지도 않는 것이어서 오히려 정의를 해칠 수도 있다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거짓말을 한다.
" 밑지고 팔아요 본전만 주세요.! " 우리는 그들이 거짓을 말하는 줄 뻔히 알면서 시금치를 사고 생선을 산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우리도 먹는다
만약 시장 상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시금치도 생선도 사지 않는 다면
그것이 정의일까? 우리는 이렇게 거짓을 맏아들이며 살아간다
흠 있는 내가 남의 흠보다는 내 흠을 먼저 보고 남의 장점을 보아낼 때,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형평이며 평등이며 사랑이기에 그때야 비로소 내 안에도 진정한 정의가 자리 잡을 것이다
정의 없는 자비는 혼든의 어머니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정의롭지 않은 것을 무조건 그냥 감싸자는 것은 아니다
흠과 장점을 서로 형평이라는 저울에 달아보는 그런 균형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더러운 곳에 빠져보지 않으면 남의 추함을 참아낼 수 없다. 내가 마른 땅에서 깨끗한 옷만 입고 있다면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는 퀴퀴한 냄새, 오물로 얼룩진 사람들과 맞댈 수 없다
고고한 나는 고고한 사람들과만 살아야 하는가. 내가 마른 땅에 있다고 정말 깨끗한 사람인가.
진흙탕에 있는 사람들이 정녕 더러운 사람들인가.
이제야 나는 청탁(淸濁)울 함께하라는 옛날 스승의 말씀을 이해할것 같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또 다른 말을 인용해보자
" 자비가 정의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정의를 채운다."
임권택 감독의 추천의 글 중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 갔다
얄팍한 책의 두께에 비해 너무나도 배가 불러왔다
누구나 경험하고 누구나 흘려 보내는 그 일상의 사건 흔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