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풍경

밤 기차

저녁 바람 2012. 1. 16. 12:26

제목이 밤 기차라고 해서 낭만이 넘치는 글 일것이라 생각들 할텐데...

밤 늦은 시간
전철을 기다리다 보면
하나 둘 먼곳을 향해 출발하는 기차들을 본다

KTX 는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빨리 달려서 종착역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좀 천천히 달리는 기차의 유리창은
푸른빛이 어딘가 안정스러워 보이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흐트러짐이 없다
괜스리
멋있어 보이고
한가로운 멋이 풍겨 난다

밤기차를 타고
그 밤 기차가 얼마나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지 아는 블로그 쥔장인데도
멋스러워 보이니...

대학 4학년
막 그때 등산붐이 일어나서
코펠, 버너, 등산화, 베레모, 베낭을 준비해 놓고 어디 바람좀 쏘일때가 없나 안달을 부릴때
무박 코스로 속리산 문장대를 갔다 올꺼나 하는 과 친구들의 제의가 들어 왔다
무박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科 친구들 7명이 서울역에서 만나
밤 기차를 탔다

수학여행은 봄에 다녀 왔고
그 당시
10월은
잘 하면 1,3,5,7,9 로 놀수 있는 황금의 10월이다
1일은 국군의 날
3일은 개천절
5일은 재수 좋으면 추석이 끼어 있고
6일이나 7일은 토요일이거나 아니면 일요일
9일은 한글날
그래서 잘 하면 10월 첫주는 학교에 갈 필요도 없이 좍 집에서 쉬는 날이 된다

어딘가 떠나지 못해 안달이 나는 나 같은 경우는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서 서운한 달이다

10월 24일은 UN day 라고 해서 혹시 그렇게 기념일로 기억해 주면
UN에 가입이라도 시켜 줄까 해서 공휴일로 논다는 말도있었다.

하여튼 우리는 가을이 무르익는 10월 23일 밤 기차를 탔다
완행을 타고
새벽에 우리는 대전역에 내렸고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문장대를 올랐다
이렇게 밤 기차를 탄 이유는
과 대표를 맡은 친구가 도저히 학교일로 하룻밤을 자고 올 수 있는 스케쥴을 만들지 못해
우리가 그 친구의 사정을 몽땅같이 껴안고 무박으로 떠난것이다
그 과 대표친구는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이 떠들섞할때 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젊은 혈기가 무엇인지
문장대를 거뜬히 오르고
하산하여
다시 밤기차를 타야 한다
문장대 정상에서 비가 온다고 우산을 들고 내려 오는 여대생을 만났다
왠 우산...
근데 그 여학생이 언니 하면서 날 보고 반갑게 아는체를 한다

검정 박쥐 우산을 쓴 그녀는 동생 친구 ** 이다.

이 동생 친구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숫기가 좋은 친구인지
우리 오빠들하고 아주 스스럼 없이 이야기도 잘 했고
친구 오빠라고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는 모습이
늘 오빠를 어려워하던 동생들과는 틀린 모습에 오빠들도 아주 귀여워해 주었다

기다란 무릎위까지 오는 부츠를 현관에 벗어 놓은 것을 보고 우리 오빠들은
맨 처음에는 다리를 다친 아이가 놀러 왔는줄 알았다고 한다
거의 허벅지 반까지 올라 오는 부츠였으니 놀랄만도 하지..

얼마나 숫기가 좋은지
밥 먹으라고해도 한번도 사양하는 법도 없고
수다 스러운 그 모습도
우리 식구들은 그런 모습을 접하지 않아서 아주 매력으로
봐 주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 수다는 멈추지를 않아
콩나물을 집어다 자기 밥그릇에 얹는다는 것이 상 밑으로 떨어져도 모를정도
그리고 그 콩나물이 없어진것을 보고
본인 자신도 잠시 놀랐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는 그 친구의 추억이다

그 당시는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 동생 친구는 순전히 그냥 취미로 타던 스키로
그해 대학생부 스키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 동생 친구를 만난것이다
같이 서울올라 가게 되었다고 그 아이는 무척은 좋아 했는데
난 4시간 정도의 고행이 시작됨을 그때는 알 수가 없었으니
밤기차는 자리가 넉넉하여
그 동생친구는 내 옆에 앉아 가게 되었고
출발하면서
피곤이 밀려온 그 아이는
반은 거의 나에게 얹혀서 자는 형국이 되 버렸다
처음에는 어깨쪽을
그 다음에는 아예 내 무릎에 자기 온몸을 얹다 싶이 기대고
무박으로 왕복 거의 5-6시간을 등산한 나는
그렇잖아도 잠자리(?) 가 불편해 온몸이 뒤틀리고
내 한몸 가누기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그 아이까지 얹혀 있으니 이건 순전히 악몽이다
오즉했으면
지금 까지도 그 아이가 내 무릎에 온몸을 싣다 싶이 얹힌 모습이 지금도 안 잊혀진다
그 다음에는 다시는 밤기차는 타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홍도를 가기 위해
여행사에 등록을 하고 보니
하룻밤이 밤 기차이다
여행사에서 갈지 말지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두사람을 더 모집한 것이 화근
좌석보다 사람 숫자가 한명이 더 많았다
어찌 어찌하여
우리 두명이 (난 올케와 함께 떠난 여행) 앉는 자리에
나이가 좀있어 까탈 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우리 좌석에 끼어 앉았는데
여름밤은 왜 그리도 덥고 긴지...
붙어 앉은 서로의 체온과 후덥지근한 기차실내의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이였다
이럴려고 여행을 떠났나 싶을 지경이였다

8시까지 서울역 도착하라고 해놓고
출발은 거의 9시 30분인가 10시에 떠났으니
우린 출발하기 전부터 더위에 지쳐 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간 밤기차의 홍도 여행은
재미 보다는 그냥 홍도를 갔다 왔다는 의미 그 이상은 아니였다.

밤 기차하면
고생스럽게 밤 기차로 출장을 가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
강원도쪽으로 일 보러 가시는 일이 많아서
청량리에 가서 밤 기차를 타신다
그럼 침대칸을 이용하는데
상단은 조금 싸고 하단은 조금 비싼것 같다(지금도 침대칸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늘 내가 기차표를 사러 다녔다
우선 하단을 달라고 하고
없으면 상단을 구입하여야 한다
아마 하단은 화장실가는 경우, 잠깐 바람 쏘이는 경우에 편해서 요금이 조금 비싸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밤 기차를 타면 아침에 기차에 내려서 일 보고 돌아 오시기가 좋았고
숙박비를 줄이는 차원이셨겠지 싶다

어머님과 아버님 전송하러 청량리역에도 참 많이 갔었는데
그리고 출발하는 기차를 보고
돌아서
역에서 파는 멸치 국물에 고추가루 넣고 김 넣어주는 국수를 사먹는다
왜 그때는 그 국수가 그렇게도 맛이 있었던지
어머님도 으례히 기차가 떠나면 그 국수를 꼭 사주셨다

성격이 몹시도 급했던 아버님은
한번은 차를 타고 역으로 가시다가
집에서 신던 스리퍼를 신고 그냥 차를 타셨다가
되돌려 왔던 기억도 난다
금방 생각이 났기에 망정이지...
기사 아저씨들이 아버님을 많이 어려워 하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그 자동차는 휘발유가 아까워서
아버님은 잘 이용도 안했는데
큰오빠는 겁도 없이 잘 타고 다녔다
큰오빠가 타고 나가서 늦게까지 들어 오지 않으면
아버님은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렸다.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인가 보다

아버님 소원은 그 차를 타고
저 북녘땅에 있는 고향을 가 보시는 것이 소원이셨는데
7.4 공동 성명 이틀전인
그해 7월 2일 아무말씀 남기지 못하시고 세상을 뜨셨다

우리 친구가
어찌하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기차표가 준비가 되지 않아
밤기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갔다는 이야기는 참 대놓고 웃기도 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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